시내의 서북쪽 4㎞ 지점에 있다. 공주의 옛 이름으로 고마나루라고도 하였다. 이 지명은 그곳에 사는 한 어부가 인근 연미산의 암콤에게 잡혀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, 어부가 그곳을 빠져나와 도망치자 암콤이 그것을 비관하여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되고 있다.
짙은 안개가 소나무숲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.
'공주'와 '곰나루'
백제 때 곰나루를 '곰내'라고도 했는데, 그것을 '웅천 이라고 적었다.
후기 신라 때 서기 757년(경덕왕 16년)에 웅주라고 한 것을 '곰주'라고 부르게 되었다.